- STORY
- 01스토리
1980년대 초임 발령지 정선중학교로 들어가는 길은 비행기재라는 비포장 외길이었다. 높은 산비탈의 8부 능선을 나선형으로 굽이굽이 돌아가는 길에는 차량 2대가 가까스로 교차할 수 있는 장소가 군데군데 있었고, 산자락에는 뭉게구름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정선에서 4년간 생활하면서 갈 곳이 없었기 때문에 3학년 담임으로서 학생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것이 전부였다. 일요일에는 공설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평일에는 도시락을 2개씩 준비하여 밤 12시까지 톱밥 난로가 타오르는 교실에서 자기주도학습을 실시하였다. 역풍이 불어오는 날은 톱밥 난로의 연기가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교실로 들어와 코와 눈을 간지럽게 하였다.
역경 속에서 제자들과 밤낮을 함께한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제자들의 열정과 노력을 신이 알아준 것이었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최선을 다한 제자들의 노력에 대한 보상이었으리라. 지금도 그때를 회상해 보면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을 실천한 것이다. 관리자가 단 한 번도 칭찬하여 주지도 않았고, 알아주는 학부모도 없었지만, 오직 내가 좋아서 제자들과 함께 한 일들이었다.
그때 제자들 중에는 명문고와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 각 분야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제자들이 많다.
그중에 한 명인 영욱이는 중학교 때 2년간 담임을 했던 학생으로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명문고에 진학하여 졸업했으나, 명문대 진학을 두 번이나 실패하고 약대에 진학하여 김포에서 현재 부부 약사로 생활하고 있다.
2016년 스승의 날에 조그만 약통을 포장한 택배가 배달되었다. 택배 안에는 기프트카드와 함께 두 통의 편지가 들어 있었다. 한 통은 제자인 영욱이가 쓴 편지이고, 다른 한 통은 영욱이 처가 쓴 편지였다.
영욱이 처가 쓴 편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제자 안사람의 편지를 읽으면서 나는 과거로의 추억여행을 하고 있었다. 조양강의 맑은 물과 제비집처럼 생긴 정선읍, 정선아리랑의 구슬픈 노랫가락, 정선 아리랑제, 서민들의 삶이 서려 있는 정선 5일장이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정선에서 1년 동안만 교사를 하고 새로운 직장을 찾아야겠다는 마음으로 찾아간 정선은 젊은 시절 청춘을 바쳤던 생활의 터전이 되었다. 그때 아낌없이 무조건 제자들에게 주었던 경험들이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것이다.
편지를 읽고 며칠 후 영욱이 처에게 전화하여 가족이 학교를 방문하도록 하였다. 영욱이 가족 4명을 만나 식사를 하면서 나는 어느덧 정선중학교 시절로 돌아가 있었다. 아들인 재영이도 나에게 편지를 썼어야 했는데 못 썼다며 미안해하는 제자 처에게 더 큰 고마움을 느꼈다.
교사가 아닌 스승으로 산다는 것은, 제자들의 가슴속에 평생 동안 살아 숨을 쉰다는 것이다. 제자들에게 건네는 말 한마디도 제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하고, 제자들의 입장에서 행동을 이해하며, 비전을 제시하고, 잠재능력을 발굴하여 칭찬하고 격려할 때 제자들은 무럭무럭 성장할 것이다.
대한민국을 바꾸고, 지구촌을 변화시킬 훌륭한 인재를 육성하는 일은 우리들의 책무이자 도리이다. 교육이 올바로 설 때 대한민국은 성장할 것이다. 오늘도 나는 제자들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꿈터(교장실)에서 제자들을 만난다. 지구촌의 미래는 밝다. 함께하는 제자들이 있기 때문에.........